ISBN 9791190944700
발행(출시)일자 2023년 06월 14일
쪽수 164쪽
크기 128 * 189 * 10 mm / 279 g
저자소개
저자 : 니콜라이 슐츠
사회학자. 코펜하겐 대학교에서 지리사회적 계급(geo-social class)을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마무리하고 있다. 브뤼노 라투르와 함께 쓴 『녹색 계급의 출현』은 10개 언어로 번역되었고, 『나는 지구가 아프다』는 현재 6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역자 : 성기완
1967년 서울 출생. 시인, 뮤지션, 밴드 ‘아싸AASSA(Afro Asian SSound Act)’ 리더. 서울대 불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4년 『세계의 문학』 가을 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시단에 나왔으며 『쇼핑 갔다 오십니까?』(1998), 『유리 이야기』(2003), 『당신의 텍스트』(2008), 『ㄹ』(2012) 등 4권의 시집을 냈다. 2015년 제1회 김현문학상 시 부문을 수상했다.
목차
골칫덩이들
존재들
세대 갈등
감염
대양
섬
각자의 자유
풍경
물
갑론을박
투쟁
땅멀미
수평선
해설 / 디페시 차크라바르티
옮긴이의 말
감사의 말
각주
출판사 서평
파리를 뒤덮은 폭염으로 인한 열대야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나’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만들어지는 여러 문제를 점점 더 많이 겪게 되는 것이 괴롭다.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은 결국 지구 어딘가 누군가가 감당할 짐으로 연결되는 것이 부담스러운 나는 친구가 방문을 권했던 섬으로 가서 쉬기로 한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은 무언가로부터 연결되지 않았으니 그런 괴로움으로부터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겠다고 기대했건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섬에서 발견한 풍경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내가 가지고 있던 괴로움과 불안의 정체는 점차 선명해져 간다.
『나는 지구가 아프다』는 『녹색 계급의 출현』의 공저자인 사회학자 니콜라이 슐츠가 남프랑스의 휴양지인 포르크롤 섬을 방문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사회학적 통찰과 약간의 허구를 결합한 책이다. 저자가 ‘문화인류학적 소설(ethnografictive)’이라고 이름 붙인 이 새로운 형식은 문화기술지와 가상의 이야기가 결합된 것으로, 개인과 사회를 아우르는 사회학적 상상력에 기초한 저자의 통찰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형식은 왜 필요했을까? 브뤼노 라투르가 이 책에 건넨 추천사에서 잘 드러난다. 라투르는 이 책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채 헤매는 사람의 성장’이라고 표현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인류세는 더 이상 성장을 보장하지 않는다. 성장보다 생존이 더 중요해졌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으나 성장을 단호하게 포기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장해야 하는가 생존해야 하는가? 사회도 갈피를 못 잡고 개인도 갈피를 못 잡는다. 여기에 생존이라는 새로운 목표는 새로운 기준을 필요로 한다. 성장을 기준으로 짜였던 가치, 문화, 정서 같은 것들을 잘 배우는 것이 더 이상 사회 구성원으로 잘 성장하는 방식이 아니게 된 것이다. 성장 대신 생존이 필요한데도 성장을 멈출 수 없고, 생존을 향하는 새로운 성장의 기준도 마련해야 하는 인간과 사회가 처한 난처함을 이 책은 슬프도록 아름답게 보여준다.
시인이자 뮤지션인 성기완의 번역은 이 책에 담긴 공감각적이고 복합적인 정서를 우리말로 정교하게 전한다. 인류세는 인간에게 엄청난 과제이자 부담이지만 인류가 스스로 초래한 결과라는 점에서 슬프고 부끄럽고 화난다. 현재에 대한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분석은 단호한 결단과 행동을 요구하지만 그대로 실천하기는 여러 이유로 어렵다. 사정도 복잡하고 입장도 팽팽하다. 애매하고 난처하다. 책에 담긴 이러한 풍경과 정취가 날카롭고 감각적으로 옮겨진 덕분에 섬에서 펼쳐지는 성찰적 경험의 순간들에 동행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섬에서 만난 사람들과 친구와의 대화 그리고 섬을 돌아다니며 관찰하고 경험한 바들이 쌓이는 동안 ‘나’는 열대야로 인해 잠을 설친 채 맞이한 아침에 내 마음을 괴롭게 했던 골칫덩이의 정체가 점차 뚜렷해져 간다. 내가 하는 행동이 누군가에게 결과적으로 짐이 되는 연결 과정에는 인간뿐만 아니라 CO₂, 곤충, 동물, 숲, 해초, 공기, 흙, 땅 등 무수한 비인간들이 함께 있음을 확인한다. 더불어 아무리 생존이 답일지언정 그 선택을 선명하게 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이해한다.
저자는 자신을 불안과 죄책감으로 괴롭혔던 골칫덩이들이 결국 피하거나 극복해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더불어 있어야’ 할 것임을 거센 바람 속에서 돛을 펴고 균형을 잡은 배 위에서 깨닫는다. 나아가 필요한 것은 대화임을 지금 우리가 마주한 흔들리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 흔들림 속에서 균형을 찾을 방법을 인간과 비인간 모두가 참여해 협상해 나가야 함을 발견한다. 결국 인류세는 인류가 초래한 결과이지만 그것을 종착점이 아니라 인류가 통과하는 과정임을 받아들일 때, 이것이 파국이라고 외치는 대신 이 파국을 바라보고 느끼고 직접 부딪칠 때, 저 앞에서 우리를 뻔히 기다리는 폭풍우를 견뎌내고 다시 한번 우리를 꿈꾸게 할 ‘거주 가능한 땅’에 도달할 수 있음을 기약한다.